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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정려원은 외계인? 다니엘 헤니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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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느 별에서 왔니> vs <봄의 왈츠>

<넌 어느 별에서 왔니>를 보고 있으면 정말 묻고 싶어진다. “너희들 외계인이니?” <소림축구>에서 주성치가 만두가게 처녀 아매에게 했던 말을 빌려, “네 별로 돌아가”라고 농담이라도 걸고 싶어진다. 그리고 진짜 묻고 싶은 건 드라마 제목처럼 “도대체 넌 어느 별에서 온 거니?”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묻고 싶은 또 한 사람이 있으니 같은 별에서 왔으나 지금은 서로 다른 입장에 서서 경쟁하고 있는 다니엘 헤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핸섬가이는 떠듬떠듬 서투른 우리말 몇 마디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외계인으로 돌아간 정려원과는 정반대로 한국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들이 온 별은 어디?
정려원이 처음 그 몸을 숨긴 곳은 27살 유희진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맑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스마일페이스였지만, 그 속에는 끔찍스러운 아픔이 남아 있었다. 암으로 인해 위를 절제했던 것처럼 그의 첫사랑 진헌과의 관계도 도려내졌고, 다시 돌아온 자리에는 김삼순이라는 어마어마한 공력의 소유자가 떡 하니 앉아있었다. 김삼순의 엉뚱함과 서글서글함에 맞서는 인물로, 정려원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얼굴의 화장을 해야했다.

그때 그녀의 무거움을 덜어주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같은 별에서 온 다니엘 헤니라는 인물이다. 김삼순과 진헌을 두고 경쟁한다는 절망적인 설정에서 그녀를 끄집어내준 다니엘 헤니는 여러모로 그녀와 같은 과였다. 유창한 외국어에, 이국적인 쿨한 이미지, 보고만 있어도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맑은 얼굴... 그들은 진헌을 두고 김삼순과 경쟁한다는 드라마 속 구도에서 자꾸만 벗어나 같은 별 출신 특유의 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별에서 정려원은 본래 호주의 맑은 하늘같은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그녀가 나온 그리피스 대학이 있는 골드코스트의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볕, 그 볕에 적당히 달구어진 바다의 열정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아무리 무거운 얼굴의 화장이라 해도 그걸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두 번째로 그 몸을 숨긴 <가을 소나기>의 박연서라는 인물은, 유희진이었을 때보다 더 심각했다. 다니엘 헤니도 없던 그녀는 절친한 친구를 사랑하는 남자를 옆에서 짝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정려원은 그저 대책 없이 맑기 만한 것이 아닌 눈물을 펑펑 흘려도 잘 어울리는 새로운 이미지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좀더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명랑함, 그 명랑함의 뒤편에 남는 우수... 마치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에서 한껏 웃은 뒤에 남는 애잔한 감정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 망원경으로 새로운 얼굴을 찾던 정려원은 이제 제대로 된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복실이의 얼굴이다.

웃겨야 산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정려원은 먼저 혜수(김래원의 옛 애인)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교통사고로 지워버린다. 그리고 복실로 태어난다. 착하게도 자신의 사고로 죽은, 과거 이미지를 가진 정려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김래원은 차츰 복실로 다시 태어난 정려원의 이미지에 빠져든다. 처음 몇 번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지만 이제 과거는 묻혀지고 현재의 모습에 더 빠져드는 것이다. 복실을 만난 정려원은 제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없이 순수한 모습(심지어는 바보스러운)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사실 제 별에서 놀던 그 모습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은, 어른들의 세계인 도시에 와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그녀의 거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촌스러움에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은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이상하게도 웃을수록 마음에 애잔함을 남기는데, 그것은 그녀가 비판하고 있는 대상, 그녀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바로 우리네 도시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한참 웃다가 한숨이 나온다.

울어야 산다
한편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같은 과라는 것을 확인했던 또 다른 별에서 온 다니엘 헤니는 정려원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정려원은 시골소녀로 환골탈태, 웃다가 울리는 진정한 개그의 길을 가고 있는 반면, 다니엘 헤니는 <봄의 왈츠>를 통해 절대로 울 것 같지 않던 조각 같은 얼굴에 조금씩 슬픔을 담아낸다. 아직 그 얼굴이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이러다가 다니엘 헤니가 우는 걸 보게 되는 거 아냐?”하고 생각할 정도로 드라마의 분위기는 그의 아픔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으로 정려원은 웃겨야 살고, 다니엘 헤니는 울려야 사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다니엘 헤니가 그 외계인의 이미지에서 점점 우리네 정서에 맞는 한국인의 모습(정스러운)으로 다가가는 반면, 정려원은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외계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드라마는 땅과 하늘의 모습으로 진전되었다. 땅에는 봄이 만연하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땅을 보나 하늘을 보나 쳐다보기만 해도 즐거운 그 얼굴들이 있기에 월화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