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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최도영과 염동일, 과연 비현실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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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는 현실적이고 소수는 비현실적인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말은 최소한 ‘하얀거탑’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쏟아지는 의견을 보면 캐릭터에 대한 현실성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 그 논란의 중심에 선 두 캐릭터가 있다. 이른바 내부고발자로 나선 최도영(이선균)과 염동일(기태영)이 그들. 선악의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장준혁(김명민)을 필두로 한 여타의 캐릭터들에 비해, 이들의 선택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정 비현실적인 캐릭터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들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어찌 보면 더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캐릭터라고 보여진다. 모두 권력과 돈을 향해 움직이는 조직 속에서 그렇지 않은 캐릭터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조직 속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들을 매번 경험하지만 조직 모두의 선택이 같을 수는 없다. 장준혁이 조직의 논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최도영과 염동일이 소수자들이 하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명인대 외과와 군대의 공통점
‘하얀거탑’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명인대 외과와 군대의 공통점. 첫째, 생과 사가 오가는 피 말리는 상황에 있다. 둘째, 상명하달.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셋째, 전쟁이 벌어지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이겨야 한다. 넷째, 조직의 꼭지점에 있는 몇몇을 위해 조직원들은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그것이 결국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다섯째, 부하직원의 희생(도덕적인 희생을 포함)에는 반드시 미래라는 보장이 따른다. 여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포기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소수자, 속되게 말해 ‘골통’들이 존재한다.

그 소수자들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 대가로 오는 것은 처절한 보복이다. 염동일이 그처럼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조직으로부터의 따돌림과 징계, 부적응자라는 낙인은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되는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양심선언’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양심을 저버림으로 해서 스스로 겪을 심적 고통이, 조직이 가할 고통보다 더 앞서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준혁이 최도영의 집에 숨어있는 염동일을 찾아와 하는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무엇 때문에 그랬냐”는 장준혁의 질문에 염동일은 “힘들었어요!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라고 말한다. 그러자 장준혁은 역시 조직의 두려움을 보여주어 염동일을 회유하려 한다. “마지막 기회야. 의사 그만 할래?”라고 되묻는 것이다. 장준혁은 돌아서 나오며 마지막까지 “염동일 가자!”는 명령 투의 말로 저 조직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지금 제 모습에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라 말하는 염동일은 조직의 두려움을 넘어서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양심선언을 한 소수자라는 문제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1월 한국일보에서 발표한 공익제보자 20인의 전화 인터뷰 결과가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제보자 중 90%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중 60%는 심지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라 답했다. 그 이유는 제보를 통해 당한 집단 따돌림, 징계와 해고, 오명 씌우기, 공갈 협박 등, 조직의 가혹행위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양심선언을 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오히려 비난을 가했다는 것.

최도영과 염동일이란 캐릭터에 대한 비현실 논란은 바로 이점에서 기화한 것이 아닐까. 문제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게 아니고, 그들이 ‘양심선언을 한 소수자’라서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골통’이라 부르는 그들 말이다. 이 점을 뒤집어서 보면 왜 그다지도 장준혁이란 캐릭터가 ‘대단히 현실적’이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준혁, 그는 바로 조직 속에서 양심보다는 현실을 선택하면서 더러워도 버텨야 하는 대다수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준혁이 잘못됐고 최도영과 염동일이 옳은 일을 한 것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조직을 경험했고 그 쓴맛과 단맛을 알고 있다. 소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장준혁이 했던 것과 유사한 선택들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끔씩 최도영과 염동일 같은 사람들이 조직에 나타난다.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모두 암묵적인 동의로 행해져왔던 다수의 비양심적 선택들에 대해서 그들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러니 다수의 시선이 고울 리가.

비현실적으로 보고 싶은 그들
최도영과 염동일이란 캐릭터에 쏟아지는 비현실 논란은 바로 이 다수가 내부고발자를 목격했을 때 벌어지는 양상과 유사하다. 우리가 그들 캐릭터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속내에는 ‘비현실적으로 보고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이것은 어쩌면 시청자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 좀더 리얼하게 현실적으로 공감할만한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서 장준혁을 전면에 배치하고 최도영의 비중을 낮춘 것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의 이런 심리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때론 ‘현실’보다는 ‘현실이었으면 하는’ 것을 극화해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 현실이건 아니건, 장준혁은 바로 드라마 속에서 현실이었으면 하는 캐릭터였던 것이고, 최도영과 염동일은 그 반대였을 뿐이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캐릭터라고 해서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하얀거탑’의 캐릭터 현실성 논란은 우리사회의 다수와 소수, 조직의 동조자와 내부고발자를 보는 시선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