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봉이>와 농민문제
KBS <인간극장>이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 ‘인간’이라는 단어에 ‘극장’이 붙는 것은 그 출연자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할 수 없는 장애우라면 드라마는 2배의 강도를 가진다. 2002년 <인간극장>에 소개된 배형진 군의 이야기가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되어 대성공을 하고, 그 바톤을 이어받아 엄기봉씨의 이야기가 <맨발의 기봉이>로 영화화된 것은 바로 그런 인간드라마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 장애우의 이야기가 정상인이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이 땅에 몸은 성하지만 상황은 기봉이와 다를 것 없는 수많은 소외된 인물들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바보는 어떤 의미일까
『바ː보[명사]. 1.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2.‘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또는 욕으로 이르는 말. - 네이버 국어사전』
하지만 이 시대에 ‘바보’라는 단어는 아마도 한 가지 의미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착한 사람’이다. 어려서 열병을 앓아 나이는 40살이지만 지능이 8살에 머문 한적한 시골마을의 기봉이는 ‘바보(1번 뜻의)’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2번 뜻의)로 놀리면서 허드렛일을 시킨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일을 해주고 얻어오는 음식을 빨리 엄마에게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맨발로 뛰어다닐 정도로 효자인 ‘너무나 착한 사람, 바보’이다.
약삭빠르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현대인들에게 바보가 제 3의 의미를 추가하는 것은 ‘바보만도 못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자기는 고급외제차를 끌고 골프에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노모는 산골 기도원에 버리는 작금의 상황은 기봉이의 ‘바보행각(?)’을 숭고하게까지 만든다. <맨발의 기봉이>가 가진 감동의 실체는 장애우라는 소외된 인물이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착하다는 점에 있다.
왜 그들은 달리는가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그랬듯이 기봉이도 달린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야 달리기란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평범하지 못한 이들에게 달리기는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을 보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실 초원이가 달린 것은 엄마의 집착적인 노력 때문이며, 기봉이가 달린 것은 엄마의 틀니를 해주기 위한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혼자 서기 어려운 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그만큼 크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는 알게된다. 이들이 달렸던 것은 사실 그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초원이는 마지막 순간에 엄마가 마라톤 대회에서 늘 묻곤 하던 질문을 엄마에게 되던진다. “초원이 다리는?”이라는 질문이 초원이의 입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엄마의 힘이 아닌 자신 스스로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같은 의미로 “서라면 서고 달리라면 달리라”던 동네 이장님인 임하룡의 말을 무시하고, 달려나가는 기봉이의 모습은 스스로 서는 한 인간의 감동적인 모습을 잡아낸다. 그들이 달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이며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존재를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이라는 길 옆에 선 사람들
정상적이지 못한 몸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마라톤이라는 긴긴 인생길을 달려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단지 엄마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편견도 존재하지만 그들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따뜻한 손길들이 있다. 초원이 옆에는 그를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코치 선생이 있고, 기봉이 옆에는 아들처럼 그를 아끼는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기봉이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살아가는 배경이 시골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바보인 기봉이와 정상이지만 비뚤어진 마음의 탁재훈을 비교해나가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꼬집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이장님댁 아들 탁재훈은 사실 모든 것을 기봉이에게 빼앗긴다. 아버지나 사진관 주인 김효진이 “기봉씨를 배우라”고 하는 말은 사실 탁재훈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관객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탁재훈은 그 스스로도 소외된 인물이다.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그가 가진 상실감은 ‘시골 촌구석’이라는 답답한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소외된 자들의 대표주자, 기봉이
기봉이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날, 기봉이의 엄마를 엎고 달리는 탁재훈은 저 스스로도 그리 잘난 것 없는 소외된 인물이라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경한 시골사람들이 기봉이가 이기길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소외된 계층의 한 면을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봉이와 정상인들의 마라톤 대회는 마치 힘없는 시골사람들과 늘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는 도시인들과의 대결처럼 쓸쓸하다. 무장한 전경들을 향해 보잘 것 없는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농민들처럼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소박하고 따뜻한 시골사람들이 맨발인 그에게 운동화를 준 것처럼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소외된 이들의 맨발에 운동화를 신겨준다. 사진관 주인으로 나온 김효진은 기봉이의 신발끈을 매주면서 말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걸어도 된다”고. 그 말은 마치 “말은 안 했지만 당신의 힘겨운 노력을 알고 있다. 빨리 가지 못해도 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들린다.
물론 이 영화는 실제 사실을 극화했기 때문에 이런 보다 확장된 의미망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웃다가 울리는 휴먼 드라마에서 굳이 저 농민들과 같은 소외된 계층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그만큼 삶이 팍팍하기 때문일까. 수많은 이 땅의 ‘기봉이’들은 왜 여전히 맨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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