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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낮과 밤', 남궁민 아니면 과연 이 오리무중을 감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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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낮과 밤', 시청자들은 몰입할까 포기할까

 

28년 전인 1992년 어느 산골에 위치한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 깜깜한 밤이지만 솟아오르는 불길로 환한 그 곳으로 어린 아이가 겁도 없이 걸어 들어간다. 그곳은 죽은 자들 천지다. 아직 살아남은 자들도 살아있다 보기 어렵다. 그들은 서로를 찌르고 죽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다. 건물 안 어느 방으로 들어간 아이에게 공포에 질린 한 청년이 다가와 안아주지만, 오히려 청년을 다독이는 건 아이다.

 

청년에게 자신과 함께 나가자고 말하는 아이는 말한다. 이 미친 광경을 만든 건 바로 자신이라고. 그러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 혼자 있어. 태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데 절대 틀릴 리 없는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어. 나는 궁금해져.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그 곳을 빠져나오는 까마귀가 잠시 앉았다 날아간 곳에 '하얀밤마을'이라는 그 마을의 표지석이 보인다.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은 이 미스터리한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짧은 장면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펼쳐 놓을 애매모호한 사건들을 예고하는 듯, 상식을 깨는 상황들이 보여진다. 밤이지만 낮처럼 환하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서로를 살육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괴로워하기보다는 웃고 있고, 보호받아야 할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오히려 이 모든 일을 벌였다며 나이든 청년의 등을 다독인다. 그 마을 이름도 역설을 담은 '하얀밤' 즉 백야다.

 

<낮과 밤>의 동력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한다. 그 궁금증은 우리가 분명하다 여기는 낮과 밤 같은 경계들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생긴다. 그 사건이 있은 지 28년 후 역시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연쇄 예고 살인'이 그것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제보된 암호문 같은 살인 예고 이후, 스스로 물에 빠져 죽거나, 건물에서 투신하고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주는 사건이 예고대로 벌어진다. 그런데 그 죽은 자들에게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려는 흔적이 없는데다 웃고 있다는 것. 어딘지 28년 전 그 사건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저마다 각각 벌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그러면서 어떤 실마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낮과 밤>은 단서를 던져주기보다는 더 깊은 미궁 속으로 시청자들을 빠뜨린다. 그것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도정우(남궁민)와 FBI에서 파견된 수사관 제이미(이청아) 또한 어딘가 28년 전 사건과 연계된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제이미는 갑자기 28년 전 아이가 주문처럼 얘기했던 말들이 환청처럼 들려오고, 도정우는 그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한(심지어 그를 찾고 있었던 듯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드라마는 이 연쇄 예고 살인의 용의자로 도정우를 슬쩍 세워놓는다. 형사지만 그는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걸까.

 

<낮과 밤>이 시청자들을 끌고 다니는 방식은 이렇게 오리무중의 사건들 속으로 밀어 넣고 단서를 주기보다는 또 하나의 미궁을 만들어 저마다 추측하고 추리하게 만드는 식이다. 물론 드라마는 아주 조금씩 단서를 줄 것이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또다시 뒤통수를 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며 결국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 예고 살인이 28년 전 벌어졌던 그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서 제목에 암시된 대로 선과 악 같은 분명한 경계가 아닌 위치에 서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과연 분명한 경계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한 건 시청자들이 얼마나 이 오리무중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애초에 남궁민 같은 믿고 보는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그 미궁에 들어가는 걸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궁민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배우가 있다는 사실은 계속 해서 드라마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과연 그 힘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어느 정도 감내할 만큼의 오리무중이 조금씩 풀려나가지 않는다면 남궁민이 시청자들의 멱살을 쥐고 간다 해도 쉽지는 않을 테니.(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