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외모면 예쁜 편” 김한결 ‘파일럿’
“다들 비행하느라 고생하는데 이 정도 외모면 예쁜 편입니다.” 항공사 회식자리에서 술취한 상무가 승무원들의 외모에 대한 부적절한 말들을 늘어놓자 파일럿 한정우(조정석)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렇게 둘러댄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는 그대로 녹음되어 세간에 퍼져나가고 일파만파 논란이 커지면서 잘 나가던 한정우의 삶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일자리를 잃고 심지어 이혼도 당한다. 업계에 소문이 퍼져 그 어떤 항공사도 그를 채용하지 않으려 하자, 그는 엉뚱한 선택을 한다. 술에 취해 여동생 이름으로 경력까지 위조해 지원서를 내고 결국 여장을 한 채 항공사에 들어가 파일럿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김한결 감독의 영화 ‘파일럿’은 여장을 해 한정우가 한정미로 활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코미디다. 조정석이 여장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됐고, 또 워낙 ‘코미디의 정석’으로 불리는 그가 하는 코미디인지라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힘을 발휘했다. 논란을 피하고 웃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을 함으로써 대중성을 얻었지만, 이 작품에는 논쟁적인 젠더 이슈 또한 들어있다. 한정우가 둘러대기 위해 했던 말이지만, 부지불식간에 나온 외모 품평은 그 단적인 사례다.
항간에는 아직도 ‘예쁘다’고 한 말이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영화 속 윤슬기(이주명)의 말처럼, 업무로 평가받아야할 직장에서 ‘예쁘다’는 식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칭찬이 아니라 부적절한 ‘품평’이 된다. 물론 사적인 공간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 될 수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그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희롱이 될 수 있다. 빵빵 터지는 코미디 영화지만, 현재의 달라진 감수성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글:동아일보, 사진:영화'파일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