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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대중문화와 마케팅

'써니', 추억은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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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사진출처:토일렛픽쳐스)

우리에게 80년대란 무엇일까.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일렬로 도열해 있는 전경들. 그들과 대치해 있는 학생들, 시민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급기야 뒤엉켜버리는 그들. 수배되어 쫓기는 대학생과 그 와중에도 안타깝게 싹트던 청춘의 사랑.... 이들이 그려내는 풍경들일까. 강압적으로 통제된 세계 속에서 저마다 숨통이라도 트기 위해 어두운 지하 카페에서 술과 음악에 빠져들거나, 혹은 억압에 반항하듯 밤새도록 방탕(?)한 춤을 추었던 기억일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초반에 겪은 80년대는 시대적으로만 보면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기까지 한.

그러나 이것은 사진처럼 찍혀진 현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통과해 덧붙여지고 각색된 추억의 그림이 아니다. 기억이란 우리가 겪었던 그 힘겨운 삶과 고통스런 시간들마저 달콤한 추억으로 바꾸어놓는 기묘한 생물이 아닌가.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찾아간 나이든 중년이 막상 그 첫사랑을 대하고 추억을 늘어놓자, 상대방이 그건 내 얘기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왜곡현상을 잘 말해준다. 기억은 생존을 위해 우리의 기억을 바꾸고, 심지어는 지워버리기도 한다. 삶이 기억의 연속이라고 볼 때, 절대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고통스런 기억은 삶 자체를 고행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이를 절묘하게도 바꿔버린다. 기억을 추억으로.

추억이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몇 년 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던 '화려한 휴가'에서 전경들과 시민들의 긴장된 대치상황과 이어진 끔찍한 참상이 과거 그대로의 현실이라면, 영화 '써니'의 그것은 현재의 주인공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해석된 추억이다. 그래서 전경들과 시민들의 대치상황 속에 배경음악으로 엉뚱하게도 Joy의 'Touch by touch'가 흘러나오고, 그 뒤엉킨 아비규환 속에 난데없는 써니파 7공주와 소녀시대파 7공주의 패싸움이 겹쳐지는 장면들이 가능해진다. 살벌했던 과거의 기억은 이 달콤한 시간의 왜곡을 거쳐 발랄한 추억이 된다.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잿빛 기억의 시대를 순식간에 바꿔놓는 이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통쾌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당시 청춘들의 숨통을 틔워주던 고고장에서 단골메뉴로 올라왔던 그 음악, 'Touch by touch'라니. '써니'가 위치한 유쾌한 지점은 바로 이 장면 속에 거의 모두 압축되어 있다.

영화는 현재 중년이 된 나미(유호정)가 여고시절 써니파 7공주의 리더였던 춘화(진희경)를 병원에서 만나면서 시작한다. 말기암인 춘화는 죽기 전에 써니파 7공주들이 보고 싶다 말하고 나미는 그녀들을 찾아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특별할 것 없는 뻔하디 뻔한 '영화는 사랑을 싣고'류의 스토리인 셈이다. 하지만 '써니'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당대를 살아왔다면 겪었을 만한 공감대 가는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놓는다. "설마 불치병은 아니겠지?"하는 물음에 "얼마 못산대."하는 드라마의 클리쉐 앞에 병실이 온통 뒤집어지는 풍경은 위안 없던 시절 드라마에 푹 빠져 살던 서민들의 씁쓸하지만 우스꽝스런 삶을 공감가게 포착하고, 패싸움에서 기가 눌리자 뒤돌아서며 괜스레 "젊음의 행진 보러 안가냐?"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당대의 코드들이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특히 80년대라면 꼭 있었을 법한 캐릭터들은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늘 고등학교라면 존재하던 18대1의 신화로서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강소라)가 있고, 외모에 집착하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김민영), 욕으로 싸우는 욕쟁이 진희(박진주), 문학소녀 금옥(남보라),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김보미) 그리고 누구나 꿈꾸었을 하이틴 잡지 표지모델 수지(민효린)가 있다. 영화는 이 어디선가 누구나 한번쯤 봤음직한 캐릭터들에, 당대의 코드들인 나이키, 교복자율화, '젊음의 행진'이나 '영11' 같은 TV 프로그램,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소피 마르소 등등 추억의 그림들을 덧붙여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코드들만으로 관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써니'는 타자의 이야기에서 이제 관객들 자신의 이야기로 전화된다. 물론 추억이라는 필터를 낀 청춘의 달콤 상큼한 이야기로.

무엇보다 '써니'에 깔리는 음악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추억 불러내기 효과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Joy의 'Touch by touch'는 물론이고,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니엠의 ‘Sunny'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또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영화 '라붐'의 주제가로 리차드 샌더슨의 'Reality'가 이 영화를 오마주해 흘러나오는 장면은 '써니'라는 추억 열차를 타는 마법의 열쇠 역할을 한다. 음악만큼 즉각적으로 추억과 접점을 만들어주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악은 또 얼마나 이성을 무장해제시키며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가.

입소문을 타고 점점 흥행을 향해 달려가는 '써니'의 성공은 추억이 어떻게 하나의 달콤한 상품으로 만들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굳이 어떤 특정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것만으로 추억은 저 스스로 상품을 구성해낸다. 즉 추억 상품은 물론 과거라는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게 만들어져 나오는 완제품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것으로 재조립되는 조립품이란 얘기다. 또한 이 상품의 저변은 완제품일수록 줄어들고 조립품일수록 늘어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써니'는 이 저변을 넓히기 위해 심지어 '7공주'가 가질 수 있는 여성들만의 공감대라는 틀마저 깨버린다. 여성의 시선이 아니라 남녀를 떠난 인간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담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써니'는 출연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추억 상품이 된다.

물론 추억 상품은 늘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써니'가 보여주는 것처럼 최근 들어 더 늘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아마도 새로운 구매계층으로 중년층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세시봉' 열풍이 확인한 것처럼 이 시대의 중년층들은 각박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자신들의 문화 찾기'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이 중년층은 세대적으로 보면 기묘한 위치에 서 있다. 개발시대를 살았던 장년층과는 달리 젊은 생각과 교류하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추억상품에는 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공존한다. 'UV신드롬 비긴즈'가 80년대 풍의 음악과 현재의 페이크 스토리 문화를 공존시키듯, '써니' 역시 추억과 현실을 동시에 병치해서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이 독특한 문화상품의 세대적 접점이 생겨난다. 과거의 세대에게는 향수를 주지만 현재의 세대에게는 '(과거와 접목된) 새로움'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기억의 재조립으로서의 추억은 그래서 세대를 뛰어넘는 폭넓은 타깃을 갖는 문화상품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의 트렌드가 상품으로서나 소구층으로서나 시사하는 바는 단지 대중문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