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 시작부터 시청자들 뒤흔든 감정의 정체
“제 이름은... 구덕입니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제 주인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임지연)는 이름을 묻는 옥태영(손나은)에게 그렇게 말한다. 구덕이. 사람 이름을 어찌 구더기라 지을까. 그것도 구더기처럼 살라고. 하지만 이건 ‘옥씨부인전’이 그리는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의 현실이다. 노비들의 이름을 그러했다. 구덕이의 아버지는 개죽이(이상희)였고, 송서인(추영우)의 몸종도 쇠똥이(이재원)였다. 구더기, 개죽, 쇠똥 같은 미천한 존재들. 심지어 ‘몸종’이라 불리던 그들의 이름이다.
‘옥씨부인전’은 바로 그 역사의 기록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채 구더기처럼 때론 개죽처럼 길가에 널린 쇠똥처럼 살다간 이들의 기록이다. 어쩌다 운명에 이끌려 옥태영의 삶을 대신 살게 된 구덕이가 자신을 추적하는 추노꾼들을 피해 살면서도 자신 같은 억울한 처지에 놓인 힘없는 민초들의 편에 서서 그 입장을 대변해주는 외지부(변호사)로 활약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 옥태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삶이고, 따라서 진짜 자신의 삶을 애써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질 참이다.
그런 구덕이의 진가를 알아보고 첫 눈에 큰 깨달음과 더불어 사랑에 빠지는 송서인(추영우)의 처지도 만만찮다. 명문 송 대감댁 맏아들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기녀에게서 태어난 서자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며 길 떠나는 길동이처럼 집을 나선 송서인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던 기방에 갔다가 그 곳에서 예인의 길에 들어선다. 자기도 모르게 예인들의 소리와 춤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그가 예인이 되기로 작심한 건 다름아닌 구덕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사는 게 힘드니까요. 이런 걸 보는 동안에 한 시름 잊는 겁니다. 눈먼 아비가 어미도 없이 젖동냥으로 키운 심청이가 왕비마마가 되다니요. 현실에서 가당키나 합니까?” 멀찍이 심청전 한 마당을 내려다보며 소리가 별로니 품평이나 하는 그에게 구덕이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좋은 겁니다. 우리한테는 오지 않을 행복한 날들을 상상하면서 대리만족 하는 게지요.” 그 때 송서인은 알게 된다. 하루하루 수고한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이 예인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직접 소설을 쓰고 그걸 춤과 연기를 곁들여 전하는 전기수로서 유명해졌지만 그가 예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안 송대감(허준석)은 집안을 욕보인다며 질책한다. 그래서 그는 송서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신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구덕이도 송서인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갖고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구덕이는 옥태영이라는 이름을 갖고 평생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야하고, 송서인 역시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간다.
두 개의 이름. 진짜와 가짜. 무대 밖의 삶과 무대 위의 삶. ‘옥씨부인전’은 조선사회라는 배경을 끄집어와 이 양자를 뒤엎는다. 구덕이와 송서인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진 운명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한 진짜 삶이고 현실이라면, 옥태영과 천승휘의 삶은 비록 가짜지만 그걸 뒤집고 그 운명과 맞서는 삶이다. 그들은 모두 그래서 각자의 무대 위에 오른다.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 연기하는 삶은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어간다. 참으로 전복적인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옥씨부인전’은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을 판사 장드코라스가 기록한 ‘마르팅게르의 귀환’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브로 백사 이항복이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대가 다르고 공간이 달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찌 이리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는 감정의 파고가 느껴지니 말이다.
노비와 양반으로 나뉘어져 노비들은 개돼지처럼 살다 죽어야 하고 양반들은 그 위에 군림하는 사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울림을 준다. 그건 우리가 사는 삶이 반상으로 나뉘어진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있어서다. 그래서 구덕이와 송서인에게서는 지금의 아픈 현실 앞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낮은 자들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때로는 억울하게 죽어가면서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네 가슴을 뜨겁게 하는 건 뭐냐? 그래그래 네 꿈은 무엇이냐?” 송서인이 물었을 때 구덕이가 하는 말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꿈.. 아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요. 발목이 잘리거나 머리채가 잘리지 않고.. 그저 사는 것이요.” 그렇다. 이들의 꿈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고 부귀영화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늙어 죽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현재의 우리들이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래서 ‘옥씨부인전’이 주는 위로와 공감은 크다. 사극의 틀을 갖고 반상이 나뉘어진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아픔과 행복과 위로가 공감된다. 연기 잘 하는 건 이미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거의 작두를 탄 듯 그 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임지연과 ‘오아시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토록 멋진 조선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추영우는 물론이고 다른 사극이었다면 장삼이사로 나왔다 사라지곤 했을 막심, 도끼, 백이 같은 인물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김재화, 오대환, 윤서아에게도 ‘예인들의 힘’이 느껴진다.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지만 기분좋게 심상찮다.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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