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몰입감 (18)
주간 정덕현
‘서울의 봄’, 쉴 틈 없는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실제 역사 김성수 감독의 영화 은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다. 1979년 신군부의 반란 사건이 그것이다. 영화적 각색과 허구가 더해져 있지만, 기성세대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 당시 하나회를 주축으로 벌인 반란의 주동자로서 영화가 전두광(황정민)이니 노태건(박해준) 같은 새로운 이름을 입혔어도 관객들은 대부분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실제 역사가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을 본 관객이라면, 그것도 당시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고 의외로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적이 놀랄 게다. 실제로 2시간 20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의외로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 순삭’의..
소지섭, 김윤진, 나나가 ‘자백’을 통해 보여준 것들 시작과 함께 부감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산세가 마치 앞으로 이 영화가 펼쳐놓을 만만찮은 이야기를 예감케 한다. 서로 겹쳐져 있는 산들은 이야기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를 말해준다. 그 산세들이 그림으로 변하고 그려진 그림 위에 붓칠이 계속 채워지는 오프닝 신도 마찬가지다. 은 그런 영화다. 진실인 것처럼 보이던 사건이 한 꺼풀을 벗겨내면 거짓으로 바뀌고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그런 영화. 그래서 이 시작점에 시선이 포획되면 끝점까지 시선을 돌리기가 어려운 극강의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유민호(소지섭)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돈 가방을 챙겨들고 호텔을 찾아가고, 거기서 엉뚱하게도 불륜 상대인 김세희(나나)를..
'사이코지만 괜찮아', 서예지는 김수현을 놀게 할 수 있을까 "나 그냥 너랑 놀까?" tvN 토일드라마 에서 강태(김수현)가 문영(서예지)에게 툭 던지는 그 말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건 강태가 처한 입장이 담겨 있는데다, 문영이라는 이 드라마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어째서 필요했는가가 함축되어 있다. 강태는 놀지 못한다. 여기서 놀지 못한다는 의미는 마음껏 자기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자폐를 갖고 있는 형 상태(오정세)에 묶여 있다. 1년마다 때가 되면 나타나는 나비 때문에 발작을 하고 그래서 수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은 돌보려 하지 않는다. 그건 상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동생 강태에게 자신이 짐이라는 사실을 힘겨워한다..
‘부부의 세계’의 충격·분노, 김희애가 첫 회만에 만들어낸 몰입감 역시 김희애다. 그의 섬세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첫 회부터 이런 다양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JTBC 새 금토드라마 는 첫 회부터 파격적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만 보였던 지선우(김희애)의 세계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불륜으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다 금이 가더니 결국 무너져 내렸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무너지는 그를 부축해줄 이들조차 모두 그 배신의 공모자들이라는 걸 그가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완벽해 보였던 부부의 세계에 생겨난 균열은 아주 작은 틈새로부터 시작했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온 립글로즈는 어딘지 남자들이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아침에 출근할 때 남편이 매어준 그의 목도리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더 게임’, 진실을 보는 눈과 운명을 보는 눈 운명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MBC 수목드라마 의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죽기 직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김태평(옥택연). 과거 ‘0시의 살인마’로 불리던 조필두라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 살해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서준영(이연희) 형사. 그리고 국과수 법의관이지만 사실은 살인범인 구도경(임주환). 결국 구도경이 이준희의 딸을 살해하게 된 이유는 조필두가 진짜 연쇄살인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죽음을 보는 김태평을 이용해 드러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조필두가 잡혀 현장검증을 할 때 어린 구도경(김강훈)이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그가 왜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진실을 밝히려 하는가를 설명해준다. 무려 20여년 간이..
'흉부외과' 어째서 이 병원엔 의사가 고수·엄기준밖에 없을까SBS 수목드라마 의 박태수(고수)와 최석한(엄기준)은 닮았다. 일종의 평행이론처럼도 보인다. 둘 다 태산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출신대학이 태산대가 아닌 해원대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 그럴수록 실력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 그 누구보다 좋은 수술 실력을 갖고 있지만, 둘 다 가족에 얽힌 아픈 사연들을 갖고 있다. 최석한은 자신의 딸을 잃었다. 그 순간 이사장의 딸 윤수연(서지혜)을 수술하게 되면서다. 박태수 역시 어머니를 잃을 뻔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내부고발해 정직처분을 받은 황진철(조재윤)은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타 병원들을 수소문 하..
‘쇼미더머니777’, 돈과 성공 판타지로 만들어진 힙합씬이번 Mnet 에는 이전 시즌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그 첫 번째는 갈수록 점점 지원자가 늘고 있는 1차 예선전의 장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껏 에서 항상 처음 시선을 끌었던 건 바로 이 1차 예선전이 연출하는 장관과, 거기서 늘 존재하기 마련인 특이한 출연자들을 통한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슈들 중에는 힙합에서 늘 논쟁이 되던 이른바 ‘힙합 아이돌’과 언더그라운드 사이에서 가중되던 ‘진정성 논란’ 같은 뜨거운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1차 예선전에 몰리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은 가 명실공히 국내 힙합의 전 분야를 아..
‘독전’, 마약 범죄 느와르에 숨겨놓은 우리네 삶의 풍경들영화 은 제목처럼 독하다. 이야기가 독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독하며 그걸 연기해내는 배우들은 더더욱 독해 보인다. 한 마디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들, 조진웅, 故 김주혁, 류준열, 차승원, 김성령, 박해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진서연까지 모두가 소름끼치는 연기 몰입을 보여준다. 관객으로서는 그들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어떻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마약을 두고 벌어지는 느와르 영화의 전형처럼 강렬한 장면들이 관객의 시선을 온통 집중시키는 바람에 이해영 감독이 이 느와르를 통해 담아놓은 많은 종교적 뉘앙스들이 슬쩍슬쩍 뒤로 숨겨진다. 이건 이라는 영화 제목의 영문명이 조금은 엉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