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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비평

탄핵 정국에 다시 보이는 K콘텐츠의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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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에 투영된 K시민의 비판의식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탄핵 정국까지, 거꾸로 갈 것 같던 시간을 다시 현재로 되돌린 건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 과정들을 보다보면, 새삼 K콘텐츠의 진면목이 바로 그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비판의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서울의 봄

비상계엄 사태를 ‘현실판 디스토피아’라 보도한 외신

지난 3일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와 그 해제 과정에 대해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K팝과 독재자들:민주주의에 가해진 충격이 한국의 양면을 드러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 기사는 한국이 최근 한류 열풍을 통해 ‘문화적 거물’이 됐지만 갑자기 터진 계엄사태로 ‘현실판 디스토피아’가 생겨났다고 했다. 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고, 이를 막으려는 계엄군들이 군용 헬기를 타고 내려와 창을 깨고 국회로 난입하는 장면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그 장면은 현실이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콘텐츠의 한 부분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실시간으로 보도되던 그 과정을 바라본 시민들은 80년 서울 한 복판에 등장했던 탱크를 떠올렸지만, 그것이 2024년 현재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에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이 정도였으니, 이를 접한 외신들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국가적 위상과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왔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게다가 그 시점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순간이었고 이제 ‘오징어게임2’의 공개를 앞두고 전 세계의 관심이 다시 한국에 쏠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문화적 자긍심이 한껏 고조되는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사태는 단 몇 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국회가 비상계엄 선포 해제를 선언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이어진 후폭풍은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저마다 응원봉을 하나씩 들고 국회 앞에 모여 대통령 탄핵안 통과를 독려하는 집회를 열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이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아 통과되지 못했던 탄핵안은 또다시 국회에 상정됐고 두 번째 투표를 통해 통과됐다. 그 광경 또한 드라마틱했다. ‘현실판 디스토피아’라고 외신이 보도했지만 그건 그저 절망적인 분위기만 가득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희망의 불씨 같은 게 담긴 드라마였는데, 그 주인공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다시 보이는 K콘텐츠의 진면목, 비판의식

외신들은 K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열광에 국가적 자긍심이 높은 한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심각한 평판의 타격을 입었다고 전하기도 했지만, 잘 들여다 보면 이번 사태는 K콘텐츠의 힘이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정확히 알려준 것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해외에서 주목받은 K콘텐츠들은 대부분 한국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꼬집거나 비판하는 작품들이었다. 외신이 ‘디스토피아’라는 표현을 썼던 것처럼 K콘텐츠에 투영된 한국 사회는 어두운 터널 안에 들어 있었다. 

 

곧 시즌2가 나올 ‘오징어게임’이 그려낸 디스토피아는 치열한 경쟁이 내면화된 계급사회였다. 약자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그 치열함과 처절함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그것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생충’은 어떤가. 지상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라는 공간으로 구획된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한국을 이른바 K좀비의 종주국으로 만든 무수한 한국형 좀비물들도 대부분 한국사회가 가진 모순되고 부조리한 시스템들을 비판한 것들이었다. ‘킹덤’이 조선사회를 빗대 권력에 굶주려 좀비가 된 지배층과 배고픔에 굶주려 좀비가 된 서민들을 비교했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한국의 입시경쟁이 만들어내는 몰개성화되어 엇나가기도 하는 아이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담았다. ‘부산행’은 KTX에 창궐한 좀비들과의 사투를 통해서 압축성장한 한국사회가 마주한 위기들을 디스토피아로 그려내지 않았던가.  

 

즉 K콘텐츠가 가진 진짜 힘은 바로 이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은 우리만이 아닌 자본화된 현대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공감이 생겨났다. K콘텐츠가 글로벌한 각광을 받게 된 이유였다. 이렇게 된 데는 한국사회가 전쟁 후 짧은 기간 안에 압축성장해오며 겪은 일들이 사실상 자본화 단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을 포함하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빠른 성장을 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문제들을 동시에 품고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의식들이 K콘텐츠의 자양분이 됐던 거였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을 때 시민들이 그 비현실적인 장면을 보며 국회로 달려갈 수 있었던 데는 K콘텐츠가 그려내곤 했던 디스토피아의 양상들을 통해 이 사태가 야기할 문제들을 즉각적으로 실감한 부분도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서울의 봄’이 주목받게 된 건

작년 방영되어 13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영화 ‘서울의 봄’은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또다시 주목받았다. 79년 12월12일에 버러진 군사 반란을 소재로 긴박하게 돌아간 7시간의 기록을 담은 이 영화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교육적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도 이 영화를 통해 당대의 계엄 사태를 눈앞에서 생생히 경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을 때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을 ‘2024년판 서울의 봄’이라고 칭하며 재개봉을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또 ‘서울의 봄’을 패러디한 ‘서울의 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의 작품이 그 시대의 어둠을 치열하게 담아냄으로써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서울의 봄’은 이번 사태를 통해 보여줬다. 

 

넷플릭스에서 지난 10월 공개됐던 김상만 감독의 영화 ‘전,란’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재조명됐다.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각각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이 되어 서로 칼을 겨누게 되는 상황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왕의 무능이 어떻게 민란으로까지 이어지는가를 그려냈다. 전쟁으로 피폐된 상황에서도 궁궐을 짓는데만 혈안인 왕의 실정으로 결국 봉기하는 민초들의 모습은 현재의 탄핵 정국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이어진 탄핵정국이라는 일련의 사태들이 보여준 건 몇몇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위기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시민의식이 한국사회가 가진 희망이라는 점이다. 여의도 집회 현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저마다 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한 마음이 되어 한 목소리를 내는 광경은 바로 그걸 상징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틱한 장면들 속에서 떠오르는 무수한 K콘텐츠들의 잔상들은 이 작품들이 본래 시민들이 가진 건정한 비판의식들을 담고 있었다는 걸 새삼 절감하게 만든다. K콘텐츠는 바로 이 높은 시민의식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시대적 갈증들을 담아내면서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던 거였다. 

 

혹자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언젠가는 K콘텐츠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비현실적으로 여겨질만큼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재연과 재구성을 통한 비판과 문제의식의 공유는 K콘텐츠에도 또 한국사회에도 희망을 갖게 하는 토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시사저널, 사진:영화'서울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