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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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그 공포와 공감이 환기시키는 현 시국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10. 11. 24. 09:16
타자에 대한 시선, 공포에서 공감으로 "들어가도 돼?" 뱀파이어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소년에게 묻는다. 소년은 망설인다. 그 소녀가 뱀파이어임을 알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물어야 해? 그냥 들어오면 되잖아." 하지만 소년의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온 소녀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온 몸에서 피를 쏟아낸다. 그러자 소년이 소녀를 꼭 껴안는다. 이 짧은 장면은 '렛미인'이라는 영화가 서 있는 공포와 공감 사이의 어느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문지방 하나, 벽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뱀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이 서 있는 거리는 그만큼 멀다. 소년은 소녀를 두려워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소녀의 처지를 공감한다. '렛미인'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그 가운데 그어진 어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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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과 심이영, 이 '두 여자' 공감간다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10. 11. 19. 15:18
한 남자를 가진 '두 여자', 서로를 이해하다 남편의 불륜녀, 만약 당신이라면 궁금한가. '두 여자'는 바로 이 모티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서 찾아낸 불륜녀와 조강지처가 드잡이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는 말자. 이 영화는 그런 통속적인 치정극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여자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흔한 치정극이었다면, 불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결국 남편이 뒤늦게 뉘우치고 조강지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조강지처를 버리고 불륜녀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 3의 길을 선택한다. 조강지처와 불륜녀가 만나 여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산부인과 의사인 소영(신은경)은 남편 지석(정준호)의 제자이자 불륜녀인 수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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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당신은 강동원인가 고수인가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10. 11. 12. 11:49
세상을 보는 두 가지 눈, 다름 혹은 같음 당신에게 '다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그를 배척하는가. 아니면 거꾸로 같은 점을 찾는가. '초능력자'는 오락영화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그 겉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그 속에 꽤 진지한 질문이 들어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제목은 '초능력자'이지만, 그 타인을 보는 것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강동원)이 한쪽 다리가 없어 의족을 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 그 초인의 능력이 유일하게 미치지 않는 단 한 사람, 임규남(고수)이 마지막에 전동휠체어를 탄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왜 이 영화의 초능력자들은 그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마치 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그려지는 걸까. '초능력자'는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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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남녀', 임창정이어서 가능한 멜로란?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10. 11. 8. 07:45
임창정표 로맨틱 코미디, '불량남녀' ‘불량남녀’에서 임창정은 여타의 작품에서 늘 그래왔듯이 어딘지 궁지에 몰리는 사내다. 강력계 형사로 칼과 주먹이 난무하는 폭력의 현장에서도 굳건히 살아가지만, 30분마다 울려대는 빚 독촉 벨소리에 신경 쇠약 직전에 놓인다. 신용사회에서 신용불량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은 실로 묵직한 것이지만, 이런 아픔이 풍자가 뒤섞인 코미디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임창정의 공이다. 그는 그저 조금 맥 빠진 얼굴로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도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불량남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인 메시지에 로맨틱 코미디가 엮여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돈에 대한 집착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