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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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매혹된 우리 영웅의 자화상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8. 5. 21. 10:58
‘올드보이’, ‘괴물’을 잇는 ‘추격자’의 영웅 ‘추격자’에 대한 칸의 반응이 심상찮다. 도대체 ‘아이언맨’처럼 몸에 잔뜩 무기들을 장착하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영웅도 아니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채찍 하나와 명석한 두뇌, 그리고 놀라운 순발력으로 고대의 유물들을 찾아내는 영웅도 아닌, 그저 보도방 여자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이 중호(김윤석)라는 소시민적인 영웅의 어떤 점이 세계의 이목을 매혹시켰을까. ‘올드보이’, ‘괴물’에 이어 ‘추격자’가 내세우는 영웅은 역시 서민이다. 그것도 평범 이하거나 때론 비열하기까지 한 서민. 이 평범한 서민들은 어느 날 비범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점점 나락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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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티 보이즈’, 자본에 포위된 청춘들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8. 5. 3. 00:47
자본에 포위된 청춘들, 혹은 우리들의 자화상 술이 잔뜩 취해 비틀대며 들어온 호스트 승우(윤계상)는 화장실 변기에 대고 토악질을 해댄다. 한 번, 두 번.... 구역질이 끄집어올린 욕망의 덩어리들이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 날 그가 마신 술은, 과거 별 볼일 없었으나 상전벽해한 부동산으로 대한민국 1%가 된 옛친구들이 준 불평부당함이 독처럼 퍼진 술이었다. 왜 누구는 갑자기 부자가 되고 왜 누구는 갑자기 날선 세상에 던져져 몸뚱어리 하나를 파는 대가로 욕망의 언저리만 핥으며 살아가야 하나. 이 구토의 장면이 ‘비스티 보이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승우가 가진 불평부당함과 조우하는 어떤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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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착한 서민의 자화상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8. 3. 4. 00:31
바보와 버려진 신발, 그리고 서민들 어느 동네나 유명한 바보 한 명쯤은 있게 마련. 그 바보를 만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나. 그냥 그런 존재는 없는 것처럼 지나쳐버렸던가. 너무 더러운 그 모습에 벌레 쳐다보듯 피했던가. 혹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서 꺼지라고 했던가. 대부분은 이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당혹스럽게도 당신이 지나치거나 벌레 보듯 도망쳤던 바로 그 바보가 주인공이다. 신발을 닮아버린 바보, 승룡이 영화 ‘바보’의 바보, 승룡이(차태현)는 늘 맨발이다. 그 맨발을 지켜주던 낡은 신발이 있지만 칠칠치 못하게 늘 잃어버리고 만다. 구멍난 낡은 신발은 바로 바보 승룡이 자신을 닮았다. 어린 시절, 연탄가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자신마저 바보가 되었으며, 그런 바보에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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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추격하는 것은 무엇인가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8. 2. 26. 01:17
‘추격자’의 엄중호와 ‘노인을 위한...’의 안톤 시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추격자’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기묘하게도 유사한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는 영화들이다. 거기에는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즉 이 영화들은 모두 고전적인 형사물이나, 스릴러에 단골로 등장하는 ‘추격과 도망’이라는 장르적 모티브를 잘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들은 그 장르적 틀 위에서 어떤 의미망을 포착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추격자’에서 추격자는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형사 엄중호(김윤석)이고 도망자는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이것은 정반대다. 추격자는 희대의 살인마인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이고 도망자는 그다지 선해 보이지만은..